중국 서예 대가의 '천수천석'의 의미는?[인터뷰] 중국 정부 1급 서예 대가 조선족 최원택 원로작가
중국 서예 부문 국가 1급 아티스트(대사)라는 최고 지위에 오른 조선족 최원택(82) 원로작가가 강조한 말이다. 그는 한국을 두고 같은 민족으로써의 애정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고 피력했다.
현재 그는 청화대학 명예교수, 베이징대학 서예계 ‘중국 예술교육 기초’ 종신 박사과정 지도교수, 중국인민대학 종신서예 명예교수 및 종신 명예 학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중국에서 대서예가 일 뿐만 아니라 서예계의 태두(泰斗)로 불리고 있다. 중국국례서예가(特供国礼书法家)로 인정받아 외국에서 국사 방문을 하시는 분들께 가끔 최 작가의 작품을 선물하기도 한다. 특히 세계 저명 인증기관인 국제 룬지 공인자격인증(Official Qualification Certificate Of International Runge)을 받았다.
조상이 경상북도 경주인 최 작가는 1942년 중국 흑룡강성 밀산시 서생 문제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서예를 좋아해 중국 서예함수대학(현 서예 국제대학)을 졸업하고 중국 서예의 최고봉인 오양 중석 선생에게 수련을 했다.
최씨 서예의 창시자로, 중국 정부가 주는 예술가 최고 급수인 ‘국가 1급 아티스트(대사)’의 대우를 받고 있는, 그의 서예 작품이 중국은 물론, 한국, 영국, 프랑스, 이태리 등 유럽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그의 작품을 인증하는 증서도 받았고, 작품들이 고가로 팔리고 있기도 하다.
기자는 현재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 출신 중국 서예의 대가 최원택 원로작가와의 인터뷰를 위해 백방 노력했고, 마침 그를 아는 한 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다. 지난 7월 초 서면 질의서를 보냈고, 7월 중순경 답장을 보내왔다. 낱말과 뜻이 조금 모호한 부분은 약간 수정하기도 했다.
“국가 1급 아티스트의 경우 대우가 크게 다르다. 높은 수준의 명성과 지위를 누리며 일반적으로 특별 수당과 보너스를 포함한 더 높은 급여 패키지를 받는다. 또한 사회보험, 의료보험, 주택 보조금 등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국가 1급 아티스트는 중요한 미술 전시회, 전시대회, 문화 행사 등에 참여할 수 있으며 전문 미술 강사, 고급 회화 재료 등 추가적인 예술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학술면에서는 국가 1급 미술가로서 중요한 학술회의, 세미나 및 문화 활동에 초청받을 수 있다. 국가급 문화예술 인재, 미술 명인 등 중요한 학술적 영예와 상을 받을 수 있다. 국가 특별 수당을 받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급여 패키지와 더 많은 예술적, 학문적 기회와 자원을 누릴 수 있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럼 그가 어린 시절부터 서예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뭐였을까.
“서예는 중국 전통문화의 보물 중 하나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과 추앙을 받아왔다. 어릴 적부터 서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서예는 독특한 예술 형식으로, 풍부한 내포와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서예 작품은 독특한 필법, 배치와 기운을 통해 예술가의 감정과 사상을 표현한다. 다양한 서체와 스타일은 각기 다른 예술적 특징과 스타일 미학을 보여준다. 서예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저는 그 속에 내재된 문화적 깊이와 예술적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를 통해 예술의 매력과 역량을 배가시킬 수 있다. 서예는 특별한 정신과 육체적 수양의 방법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는 각 홀을 집중력 있고 세밀하게 그려야 한다.
이런 집중적이고 세밀한 과정은 일시적으로 혼란스러운 현실 세계를 떠나 평화롭고 조용한 상태에 진입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과정에서 자신과 글씨체 사이의 밀접한 상호작용 속에 빠져들며, 몸과 마음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글을 쓰는 것은 인내심과 끈기를 키울 뿐만 아니라 주의력과 집중력을 향상시키며, 신체와 마음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서예는 문화 전승과 표현 방식이다. 중국 전통문화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서, 서예는 풍부한 역사 문화적 함의를 담고 있다. 서예를 배우고 감상함으로써 나는 중국 문화의 넓고 심오함을 더 잘 알고 이해할 수 있었다. 서예는 독특한 표현 방식이기도 하다. 나의 글씨체와 작품을 통해 내 자신의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고, 나의 견해와 태도를 전달할 수 있다. 서예 작품 또한 다양한 교류와 소통의 매개체로 작용할 수 있어,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 그리고 이해를 돕는다.”
“중국의 서예 예술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국경 구분이 없이, 세계 수많은 예술 장르 중 하나의 표현 방식이 됐다. 세계 예술사에서 독특한 매력과 빛을 내고 있다. 해외 화교 커뮤니티에 '서예 협회'가 있으며 일본, 한국, 북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일부 동아시아 국가들은 정부 차원에서 서예 문화를 중시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에서는 서예 인재와 자기 국가의 서예 스타를 배출하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도 서예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 어느 나라든 중국 서예에 대한 열렬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 상당히 많다.”
그는 자연스레 ‘한국의 서예’에 대해 얘기를 이었다.
“한국의 서예도 한자의 서체에서 기원했다. 한국에서 서예를 배우는 것은 인문교양을 기르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중국과 일본처럼 서예는 고아한 예술로 여겨진다. 한국의 서예 조직은 우리나라처럼 완벽한 체계를 갖춰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의 서예의 민간 조직이 매우 보편화되어 있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서예가 그림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그들은 붓의 배치와 조화로운 각도에서 볼 때 그림이 서예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서예는 예로부터 한국에서 회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붓질 배열의 힘과 조화로운 각도에서 회화가 서예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서예 예술이 회화 예술보다 더 많은 인정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종종 서예 작품을 회화 작품처럼 벽에 걸어두고 감상하며 독특한 점마다 극찬하고 작품이 지닌 먹의 매력을 칭찬하며, 전체적인 배치와 기술, 그 안에 담긴 느낌 등을 칭찬한다. 한국의 서예는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기원후 2세기나 3세기경에 중국 문자를 통해 의지를 표현하고 행동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글이 1446년에 창제된 이후에도, 한자는 여전히 공식 문자로 사용되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 시기부터 왕실 서원과 국영 고등학교에서는 중국 문학과 서예를 가르쳤다. 이러한 서예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으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역사적 시기에 수많은 귀족층과 예술가들이 자국의 서예 예술 발전을 촉진하는 데 불가피한 공헌을 했다. 저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인정을 받아 자격증을 획득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한다.”
“‘최씨체’는 수, 먹, 필, 법, 기, 세, 허, 실 사이의 변증 관계를 깊이 파악하여, ‘최씨체’의 서예가 항상 ‘담장농말총상(옅은 화장, 짙은 분)'의 미적 심미격조를 하도록 한다. 옛것을 배워 새것을 창조하며, 여러 장점을 널리 받아들이고, 옛사람의 서예 정수를 익혀 서예 기초를 중요시하여, ‘최씨체’서예 의미를 추구한다. 서예의 신, 운, 정, 미를 하나로 융합시켜, 고풍스럽고 힘차고 웅장하며 기세가 웅장하고 금석의 옛 뜻을 지니고 있으며, 노련하고 생기가 넘치는 자신만의 독특한 서예 예술 풍격을 형성하였다. 내가 창작한 모든 작품의 필화, 구조, 장법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 폰트의 아름다운 힘, 유연의 미, 전통의 미, 기품의 미, 변화의 미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서예가는 우선 양호한 자기 수양을 가져야 하며, 동시에 반드시 사회에 통합되어 사회와 인류의 발전을 주목해야 한다.
저는 서예 창작에 전념할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공익사업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많은 작품을 기부하여 서예 작가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실천하며, 항상 국가와 민족의 사업 발전을 주목한다. 이러한 국가, 사회에 대한 높은 책임감과 사명감이 추구하는 삶의 경지가 되기도 한다. 초심을 잃지 않고 붓과 함께한 70년 세월은 일생 동안 한 예술가의 꿈과 이상적 신념을 추구하였음을 설명하고 있다. 후손에게 모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붓 한 자루, 먹 한 벼루로 종이 위에 세상의 진선미에 대한 깨달음, 생명의 참뜻에 대한 깨달음을 나타내고 있다. 자신의 수양을, 높이는 동시에 사회주의 문화의 번영과 발전을 추진하는 길도 계속 걷고 쓰고 있다.”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많은 유명인사들을 만났다. 전시회에도 여러 차례 참가하였다. 대표적으로 국제문화예술교류추진회와 사단법인 운암 김성숙 선생기념사업회에서 2014년 10월에 중국 유명 서예가 작품 전시회를 한 적이 있다. 중국문화원에서도 작품을 전시했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 도자기 명장을 만나 명장이 만든 도자기에 제가 글을 써 한국 도자기와 중국 서예의 만남을 기념으로 기념작품을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저의 작품을 소장한 곳은 중국 국가 대표적 상징인 중국 육, 해, 공군 의장대에 작품을 선물해 소장하고 있다. 기타 유명 대기업과 기업인들이 소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1년 12월 천자문을 중국어와 한국어로 된 대조서예 작품을 완성하여 상해 대 세계 기네스북에 오르는 영예를 수상하고 소장되었다. 한국에서도 몇 명의 유명인사들이 소장하고 있다.”
“적수천석은 제가 여러 해 동안 고심ㆍ연구하여 쓴 작품이다. '적'은 예서체, '수'는 초서체, '천'은 전서체, '석'은 해서체, '점'은 상서체, '낙관'은 행서체이다. 여섯 가지 필체의 조합으로서 ‘적’은 위에 있는 하늘을 뜻하고 ‘석’은 땅을 뜻하고 가운데 있는 ‘꿰뚫을 천’은 인간을 뜻한다고 하여 천시, 지리, 인화(天时,地利,人和)의 환상의 조합을 뜻한다. ‘석(石)은 땅(토, 土), 천(穿)은 금(金), 수(水)는 물, 적(滴)중 艹 는 나무 목(木), 석(石) 위에 튀는 물보라는 형상적인 불꽃(火)을 대표한다.
이를 철학 오행설에 의해 풀이하면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 목생화, 화생토이므로 우주자연 이치에 맞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재난이 없이 만물이 존재하는 평화로운 삶을 그린 작품이다. 이처럼 인류세계도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전 인류가 전쟁이 없는 세계평화를 이룩하자는 취지의 작품이다. 내가 창작한 매 작품의 필획, 구조, 문장법은 모두 보는 이로 하여금 글자의 강건함, 부드러움, 전통, 신운적, 변화 등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제 작품의 의미를 말하면 인생의 좌우명 같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활력소로 작용하고 인생의 철리를 가르쳐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하나의 작품마다 저의 심혈이 기울어져 있고 심오한 의미가 담겨져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발자취가 담겨져 있다.”
“중한 문화교류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철학, 교육,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상호 이해와 존중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견고한 기초를 마련했다. 1992년 중한 관계 수립 이후, 문화, 교육, 과학 기술 등 다방면에서의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지며 전방위적, 다층적, 광범위한 교류 구도를 형성하였다. 문화교류는 양국 국민의 상호 이해와 우의를 증진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중한 전략적 협력 파트너십 발전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발휘했다.
중한 문화교류의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면 첫째, 상호 신뢰와 공감대 증진을 들을 수 있다. 학술 연구, 예술 전시, 영상 합작 등을 통해 중한 양국의 학자와 민중들은 상대방의 문화 전통과 현대 발전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함으로써 상호 신뢰와 공감대를 증진시킨다. 둘째, 문화산업의 발전 추진이다. 한류의 열풍으로 중국 문화와 예술 작품이 한국에서 전파되면서 양국 국민의 문화생활을 풍부하게 할 뿐만 아니라 문화 산업의 발전도 촉진했다. 셋째는 학술 연구의 심화를 들을 수 있다. 중한 학자들의 철학, 문학, 역사 등의 분야에서의 교류와 연구는 양국 학술계 의 발전을 추진하고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심화시켰다. 넷째는 민간 교류의 활성화이다. 언어, 교육, 관광, 스포츠 교류 등 활동을 통해 중한 양국 민중의 민간 교류가 더욱 빈번해지면서 양국 관계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잠재적 기초를 단단히 다졌다.
총괄적으로 중한 문화교류는 양국 국민의 상호 이해와 우의를 공고히 하고, 문화 산업의 발전을 추진하며, 학술 연구를 심화시키고 민간 교류를 증진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며 중한 관계의 전반적 발전에 강력한 동력을 불어넣었다.”
“한국에 방문하여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정치, 문화, 예술 분야의 유명인사들을 만나 보는 특별한 기회를 가졌다. 특별히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국회사무실에서 한국미술협회 회장 그리고 기타 임직원들과 함께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에 대한 비전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고, 한중 두 나라의 문화예술의 협력의 중요성도 말씀해 주셨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소탈하고 진지한 태도로 저를 대해 서로 의견을 주고 받았고, 특히 서예 예술의 역할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더욱이 놀란 것은 국회의사당내에 서예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 있었다.
예로부터 우리는 가훈이나 삶의 의미를 상징하는 작품을 서예로 표현하여 거실 혹은 안방에, 사업하는 분들은 사무실에 걸어놓는 습관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 문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더 실감하였다. 한국의 많은 유명인사들과 만나면서 대한민국에서의 서예 예술의 발전성과 서예 예술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많은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방문을 계기로 저의 작품이 여러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노력하여 더 좋은 글을 많이 써야겠다는 생각을 더 깊이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서예와 관련한 자신의 철학과 앞으로 활동 방향을 얘기했다.
“중국 서예는 중국 한자 쓰기의 예술이다. 한자는 선으로 이루어진 문자이다. 우선 선이 아름다워야 하고, 조합의 구조도 아름다워야 이것이야말로 서예라고 할 수 있다. 한자는 태어난 날부터 ‘미술 작품’이었으며, 여러 줄을 조합하여 그려진 '갓'이다. 한자는 천성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글자의 형태 아름다움과 내용의 아름다움을 반영하며 다양한 아름다움을 품고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아름답게 한다.
서예는 먼저 문화의 한 형태이다. 서예는 기록의 기본 기능을 달성하는 동시에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기능을 겸비하며, 또한 다른 회화나 음악 등의 예술과 같은 감정 전달과 미적 작용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서예는 매우 높은 실용적 가치와 미적 가치를 갖춘 통일된 예술 형태이다. 개인에게 있어서는, 서예는 삶의 축소판이다. 서예 작가의 개인적 경험, 교양과 자세 그리고 성격과 성품은 모두 작품에 반영되어 있다. 저는 전통적인 기술을 중시하면서 자연스러운 혁신을 추구한다. 선조를 배우는 것이 혁신의 어머니이며, 혁신은 전통의 계승이다.
전통을 계승하고 큰 변형과 독특한 변화를 추구하며 선의 깊은 함축과 섬세한 차이를 경시하는 것은 물에서 기원이 없고 나무에서 기본이 없는 것과 같으며, 새로운 창작을 할 수 없어 빛나는 것을 창작할 수 없다. 진정한 예술적 혁신은 원전을 깊이 파악하고 근원과 흐름을 이해하여 고전을 참고하여 현대를 개척하는 것이다. 서예는 시대에 맞추어야 하며, 국가를 위로하고 사람들에게 감정을 전하는 것이 저의 삶의 예술적 추구이다.
수십 년간의 서예 예술 탐구, 학습, 연구, 연습, 창작을 통해 저는 중화정과 민족정신을 고수해왔다. 모든 작품은 중국의 시대적 주제를 선포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서예 예술은 인민과 사회주의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저의 신조로 삼고 있다. 나이는 들었지만 살아있는 동안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창작할 것이다.” <저작권자 ⓒ 기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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