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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의 마지막 오랑캐, 문명을 깨우다
[서평] 이영산 작가의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기자뉴스 김철관 기자 기사입력  2017/12/10 [15:26]
▲ 표지     © 기자뉴스

하늘과 땅, 풀과 동물 그리고 인간이 공존한 삶을 살고 있는 칭기즈칸의 후예 몽골 유목인들의 얘기를 진솔하게 전개한 책이 눈길을 끈다.

 

몽골전문출판사 꿈엔들의 대표인 이영산 작가가 펴낸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201710, 문학동네)는 몽골초원의 마지막 오랑캐(오리앙카이)의 후예 두게르잡 비지아’와 그 친지들의 삶을 통해 문명의 오만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먼저 이 책은 전혀 모르고 있던 오랑캐의 유래를 알려줬다. 옛날 외동딸을 둔 황제가 무남독녀인 외동딸을 시집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마땅한 사윗감이 없었다. 고민 끝에 황제는 등나무 껍질로 북을 만들어 궁궐 밖 버드나무에 걸고 북을 쳐 소리를 내면 무남독녀를 줘 사위로 삼겠노라로 명했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얇은 북이 찢어질까 두려워 아무도 건들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날 북 소리가 들렸다. 개 한 마리가 꼬리를 치켜세워 북을 치고 있었다. 왕의 약속이기에 할 수 없이 공주는 개와 혼인을 했다. 신방을 차렸는데, 물고 빨고 할퀴는 남편 개 때문에 괴롭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공주는 개의 네발과 입에 주머니를 씌웠다. 남편은 다섯 개의 주머니를 낀 개라고 해 오낭구(五囊拘, 오낭개), 즉 오랑캐라고 부르게 됐다고.

 

오랑캐 후예인 유목민들은 담배 한 개비의 인사를 나누기 위해 수십 킬로를 달려오고, 게르()를 비웠을 때 혹시나 찾아올 손님을 위해 음식을 준비해 두고 나간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아무 상관도 없는 야생동물을 위해 물을 주는 등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발을 밟으면 반드시 악수를 해야 하는 풍습도 예사롭지 않다.

 

유목민들의 성은 아버지 이름이다. 뒤에 자신의 진짜이름이 따른다. 성 뒤에 이름이 따른 점은 우리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어원은 다르다. 우리나라 발음대로 김 씨라고 부르면 아버지 이름을 부른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듣는 이에 따라 아버지 함자를 부르니 화를 낼만 하다. 그래서 우리 민족 같이 족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으로 등장한 두르게잡 비지아는 성은 아버지 이름인 두르게잡이고 진짜 이름은 비지아이다. 그래서 두르게잡 씨라고 부르면 아버지 이름을 부르는 꼴이 돼, 실례를 범할 수 있다.

 

몽골초원에서는 천지사방이 다 화장실이다. 어디에서나 대변과 소변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문화와 환경에서 대학까지 다닌 저자에겐 불편한 일이었다. 문화적 차이 때문에 비지아와 다투는 일이 허다했다. 서로 다른 문화 환경 때문에 멱살을 잡고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멱살을 잡고 뒤엉켜 서로 흔들다가 저자가 비지아의 발을 밟았다. 바로 순간 비지아는 갑자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저자도 멋쩍게 손을 잡았다. 더 싸우기도 애매해 화해를 청하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해였다.

 

유목민들은 발을 밟으면 꼭 악수를 해야 한다. 악수를 하거나 몸에 손을 대주지 않으면 큰 싸움이 난다. 그들에게 다리가 머리나 심장보다 중요한 까닭이다. 발이 없으면 유목민이 아니다. 발병이 난다면 이동을 할 수가 없을 테니까. 비지아는 본능적으로 악수를 청한 것인데 나는 화해의 손길로 맞잡아 준 셈이 됐다. 오해가 불러온 어처구니없는 평화였다.” -본문 중에서-

 

유목민들은 집(게르)을 비웠을 때 혹시나 찾아올 손님을 위해 빵, 사탕, 치즈, 수테차(우유로 빚는 몽골 전통차) 등 음식을 준비해 두고 나간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 놓고 나가는 것이 유목민들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게 숙명인 유목민들은 이동 중에 누군가에게 숙소와 음식을 제공받고 또 누군가에게 그 만큼 베푼다. 연고가 있든 없든, 안면이 있든 없든 모든 유목민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몽골에선 이무 것도 없는 남자에게도 죽지 않는 방법이 있다. 여자 혼자 사는 게르()에 가면 된다. 유목민들은 손님을 내쫓는 법이 없다. 혼자 사는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외간 남자라고 특별히 내외하지 않는다. 여자의 그런 마음을 알기에, 가난한 남자는 손님으로 찾아가 숙식을 제공 받는다. 그리곤 계속 손님으로 남는다. 그곳에서 평생 지낼 수도 있다.” -본문 중에서-

 

사막 한 가운데 오아시스 같은 우물이 있다. 가축을 몰고 온 젊은 유목민이 물을 길어 올려, 말구유에 물을 채우면 가축들이 다가와 물을 마신다. 가축들에게도 물을 마시는 순서가 있다. 낙타와 말, , 염소와 양이 차례대로 와 물을 마신다. 유목민은 구유가 넘실거릴 때까지 물을 채운다. 충분히 마실 수 있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축에게도 인정이 닿아 있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비지아는 높이가 4320m나 되는 알타이 만년설산에서 태어났다. 천 개 봉우리가 모여 높고 낮음이 없는 몽골고원 중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비지아가 태어난 마을은 알타이산 주봉이름을 딴 뭉흐 하이르항 솜이다. 이천 명쯤 되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오리앙카이(오랑캐) 부족민이다.

 

비지아는 칭기즈칸의 정복전쟁 시대부터 청나라와의 독립전쟁까지 활약한 몽골기마병 중에서도 용맹했던 부족의 후예인 것이다. 중국인들은 전쟁 때 마다 선봉에서 달려오는 오리앙카이 부족 때문에 이만저만 곤란한 것이 아니었다. 저주와 분노의 뜻이 한껏 담겨져 오리앙카이는 오랑캐가 된다. 오랑캐는 법도 없고 도덕도 없고 인의예지는커녕, 어미아비도 몰라본다는 미개하고 야만스러운 종족으로 알려져 왔다.”-본문 중에서-

 

바로 이 유목민들이 오랑캐의 후손이다. 우리 선조들은 대개 오랑캐를 야만인으로 가르쳤다. 그래서 무찌르자 오랑캐라는 노래를 가르치기도 했다. 오랑캐라는 괴팍한 이름은 지구인들이 담합해 왜곡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오랑캐라는 이름으로 야만인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삶의 방식을 쉽게 폄훼해버린 것은 문명의 오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이해하게 한, 몽골 사람들의 유목정신이 처절한 외로움과 투쟁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오랑캐로 태어나 오랑캐의 삶을 살아온 비지아. 저자가 만난 지, 이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틈만 나면 몽골초원과 알타이산을 노래한다고.

 

저자는 비지아에 대해 어느 때는 학자 같고 어느 때는 악동 같지만, 언제나 초원을 가까이 느끼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삶을 꿈꾸는 사내, 내가 만나 본 최고의 사내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몽골 알타이산의 마지막 오랑캐와 함께 지내며 행복했던 초원이야기를 자연스레 전개했다.

 

저자 이영산은 전남 영광 출생으로 전남대 법대를 졸업했다. 전남대 용봉문학회에서 활동했으며 전국대학생문학연합 3기 의장을 역임했다. 몽골 현지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한몽대학생유목대축제 등 다수의 행사를 기획·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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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2/10 [15:26]  최종편집: ⓒ 인터넷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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