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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준하 선생, 43주기 추도식
18일 경기 포천 약사계곡 검안바위 앞에서 열려
 
기자뉴스 김철관 기자 기사입력  2018/08/19 [11:19]
▲ 추도식     © 기자뉴스


독립운동가 고 장준하 선생 43주기 추도식이 숨진 경기 포천 약사계곡에서 열렸다.

 

고 장준하 선생 43주기 추도식은 18일 오전 11시 장준하100년위원회(공동위원장 박원순, 장호권, 지선)와 포천시(시장 박윤국) 주최로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토평리 약사계곡 검안바위 앞에서 열렸다. 약사계곡은 지난 75817일 고인이 등산을 하다 의문사를 당한 곳이다.

 

고 장준하 선생 43주기 추모식에는 박윤국 포천시장, 고인의 장남 장호권 '사상계'.대표, 연규홍 한신대 총장. 은혜진 한신대 총학생회장, 전 의문사 조사위 고상만 씨 등을 비롯한 각계 인사,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등 회원 및 유족이 참석했다. 추도식은 국민의례, 추모사, 유족 인사,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했다.

 

이날 고인의 장남인 장호권 <사상계> 대표 유족인사를 했고, 박윤국 포천시장이 추모사를 했다.

 

추도식을 주최한 장준하100년위원회에는 이희호, 백기완 선생이 고문으로, 박원순, 장호권, 지선스님이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장준하 탄생 100년과 임시정부수립100년을 앞두고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종교인, 언론인, 사회운동가였던 선생을 기리고 뜻을 알리고자 지난 6일 발족했다.

 

고인은 43년 전 817일 이곳 경기도 포천 약사봉을 등산하다 약사계곡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광복군, 독재저격수로 이름이 알려진 고인의 사망에 충격을 받았고, 운구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애도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는 서둘러 추락사로 결론지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도 기무사, 국정원 등의 비협조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박정희 독재정권 때의 의문사는 아직까지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 2012년 고 장준하 선생의 묘가 훼손돼 경기 파주로 이장 하는 과정에서 두개골이 파손된 것을 알게 됐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13326, 백범 기념관에서 열린 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사인 발표에서 유골을 감식한 이정빈 교수는 단순 추락사로는 고 장준하 선생의 시신과 같은 '방어반응 없는 추락, 엉덩이 뼈 파열'과 같은 상태가 될 수 없으며, 두개골 상태와 부러진 뼈의 부분으로 볼 때 머리를 가격 당해 두개골이 깨지고, 사망이후 던져진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2016816, 장호권 고인의 장남과 고상만 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이 장준하 선생을 비롯해 과거 독재 권력 하에서 발생한 의문사를 규명하는 내용을 담은 장준하특별법안을 대표 발의, 특별법을 통한 진상조사에 힘을 쏟았으나,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특별법안은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장준하100년위원회는 고 장준하 선생 탄생100돌을 맞아 오는 26()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서울시청 광장에서 장준하100년 어울림 한마당을 연다. 평안북도 의주군 고성면 연하동에 있는 선생 생가 방문과 복원도 계획하고 있다. 포천시도 장준하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장준하 평화관건립과 약사계속입구에서 고인이 숨진 검안바위까지 산길을 정비해 장준하 등불길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고인은 1918827일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광복군과 임시정부 독립군으로 활동했다. 해방 후 월간 사상계를 창간하고 독재와 맞서 민주화운동을 펼쳤고, 1975817일 약사계곡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 추도식 참가자 단체사진     © 기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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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19 [11:19]  최종편집: ⓒ 인터넷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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