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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년 만의 문 연, 이회영기념관 감개무량하다"
[인터뷰]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 손자 이종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기자뉴스 김철관 기자 기사입력  2021/06/12 [10:24]
▲ 9일 오후 서울 남산 이회영기념관 개관식에서 김철관 인터넷기자협회장이 이종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좌) 을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기자뉴스


“‘
이회영기념관개관은 역사적 순간이고, 김개무량하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110년 만에 모신 점에 대해 부끄럽고 죄송하다.”

 

이회영기념관 개관식에서 그의 손자인 이종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지난 9일 오후 밝힌 말이다.

 

지난 9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과 함께 역사적 의미가 큰 항일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과 그 형제들을 기리는 이회영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이곳 남산에서 자란 우당 이회영 선생의 가족, 친족 등은 항일독립운동을 했고,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썼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것이다. 이회영 선생을 포함한 이건영, 이석영, 이철영, 이시영, 이호영 6형제를 포함해 총 59명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가족이기도 하다.

 

지난 9일 오후 남산예장공원이 개장을 했고, 이회영기념관도 개관을 했다. 이날 개관식에는 코로나19 와중에도 시민 300여명을 포함해 여야 정관계 인사 및 주한 체코 대사, 대선 후보로 이름을 올린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참석했다. 이회영기념관의 역사적 의미가 그 만큼 크기 때문이었다.

 

참석한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면 오세훈 서울시장, 김희걸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위원장,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쿠스타브 슬라메취카 주한 체코대사,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지역구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국회의원, 윤봉길 의사 손녀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 후손을 대표해 이종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과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우당 이회영 선생 손자, 이회영기념사업회 회장), 이종찬 건립위원장의 아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그의 친구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드라마 자유인 이회영에서 이회영 선생을 연기한 배우 정동환씨 등이다.

 

이날 기념식이 끝나고 오후 3시경 이회영기념관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이고, 4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이종걸 민주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을 만나 대화(인터뷰)를 나눴다.

 

먼저 이종걸 민화협 상임의장은 이회영기념관개관에 대해 역사적 순간이라며 김개무량하다고 전했다. 이어 후손으로서 이제 모신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도 했다.

 

우선 후손들은 할아버지에게 모두다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할아버지의 영혼이 구천을 떠돌고 계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시점에서 110년의 시간이 지난 이후, 고향으로 오셨다. 후손으로서 이제야 모신 점에 대해 죄송스럽다.”

 

그는 봉오동·청산리전투에 사용했고, 기념관에 전시된 체코 무기를 이곳에 가져오기 위해 체코 마사릭 기념관을 다녀온 소회도 밝혔다.

 

“1년 전, 이회영기념관을 위해 노력했던 서해성 작가와 함께 체코 마사릭 기념관에 간 적이 있다. 마사릭 기념관에 체코 총 등 일부가 전시돼 있었지만, 체코군단이 러시아에서 사용했던 대부분의 유물은 기념관 한 구석에 먼지가 많이 쌓인채로 100여개의 검은 궤짝에 비치돼 있었다. 궤짝 일부를 뜯었는데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사용했던 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오늘 전시된 총이다. 일본 총과 비교해 보면 우리가 어떻게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정예 러시아를 격파한 일본과의 청산리 전투를 시작하기 1년 전, 신흥무관출신들이 마사릭 체코군단에서 받은 총을 가지고 훈련을 했다. 물론 전통무예도 했고, 일본 육사생 출신인 선생들이 와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그래서 신흥무관학교 정예군들이 체코군단에서 받은 총으로 무장했다.”

 

이어 이종걸 의장은 체코군단이 준 총으로 인해 청산리·봉오동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했다고도 했다.

 

홍범도 장군이 일본군 계곡 유인 전투로 청산리와 봉오동에서 승전보를 알렸다. 1920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여 동안에 북간도, 서간도는 온통 치열한 전쟁 기간이었다. 그 전쟁 중에 몇 개 전투가 유명한데, 그중에 봉오동·청산리전투가 승리한 전투이다. 오늘 전시된 총은 체코 국민에게 추앙받고 있는 체코 마사릭 전 대통령시절 체코군단이 러시아 시베리아 전투에서 사용했던 총이기도 하다. 바로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에 승전보를 울리며 사용했던 실제 총은 아니지만, 그와 똑같은 총이 전시돼 있다.”

 

그는 할아버지 항일독립운동가의 항일역사를 그동안 우리사회가 수용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1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늦게나마 기념관이 개관한 점에 대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위해 힘썼고, 1936년도에 일본 관동군 장군을 저격하기 위해 상해에서 대련으로 가다가 체포된 그날까지 할아버지 일생의 역사, 독립의 역사, 항일의 역사를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수용하지 못했다고 하는 그런 아쉬움이 있었는데, 여전히 그 아쉬움 속에서도 뒤늦게나마 이렇게 이회영기념관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어 감개무량하다.”

 

특히 이 의장은 할아버지와 형제들의 모든 유품을 서울시에 기증했다며, 이회영기념관을 통해 항일역사를 기억하고 반추했으면 한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앞으로도 할아버지와 형제들의 여러 항일 독립운동들의 자료들을 발굴해 전시하겠지만, 현재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던 할아버지와 형제들의 기록이나 유품들을 모두 서울시에 기증했다. 서울시가 첫 번째로 서울 출신 항일운동가 가족으로 선정해 이렇게 이회영기념관을 통해 항일역사를 기리고 기억하고 우리 스스로를 반추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제가 보답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이날 이종걸 의장은 할아버지가 항일운동을 위해 세웠던 신흥무관학교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고, 그곳에서 훈련 받은 3000여명의 학우들을 발굴하는데도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신흥무관학교에서 훈련 받은 학우들이 대략 35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발굴한 사람들은 400여명이다. 나머지는 빈 공간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저는 최소한 3000여명을 채우는 것이 역사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남산예장자락에 위치한 할아버지(이회영) 집은 청나라 군단을 이끌고 온 원세계가 두 번이나 기거했던 집이라고도 의미를 부여했다.

 

기념관이 세워진 남산예장자락은 할아버지가 태어난 곳이다. 이곳에 대한 기록을 보면 할아버지가 정정했을 때, 청나라 군단을 이끌고 온 원세계가 두 번이나 할아버지 집을 찾아 기거했다. 그 당시 원세계와 직접 소통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자라고 뛰어놀고 기질을 발휘한 곳이 바로 이곳(남산예장자락)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일제에 맞서기 위해, 추운 겨울밤 늦은 시간을 이용, 몰래 야반도주해 중국으로 간 슬픔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은 나중에 조선총독부가 강제압수를 했고, 일부는 천리교 건물이 들어섰다. 나중에 애국계몽에 앞장섰던 YWCA 땅이 됐고, 천리교는 영락교회가 됐다. 이곳 1만여 평의 땅에 할아버지의 영혼이 서려 있다.”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57년 서울에서 출생해,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했다. 30, 31대 대한농구협회장과 4(17~20)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7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준 백봉신사상을 받았다. 현재 이회영기념사업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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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6/12 [10:24]  최종편집: ⓒ 인터넷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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